탈을 쓰고 시대를 기억하다: 동래야류
동래야류는 부산 동래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오광대형 탈놀이로, 신년의례와 민속극의 성격을 함께 지닌다. 정초의 지신밟기와 당산제를 시작으로, 정월 보름 즈음 펼쳐지는 탈놀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당대 민중의 삶과 의식을 기록한 하나의 사회극이자 예술이다.
이번 전시는 동래야류에 등장하는 탈과 인물, 몸짓과 구조를 통해, 전통 속에 담긴 시대의 정서와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특히 전통을 잇고 있는 연희자들이 자신이 맡은 인물의 탈과 의상을 직접 입고 재현한 장면을 통해, 과거의 기록이 현재의 몸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담았다.
동래야류는 네 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극은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히 이어져 공동체 안의 권력과 갈등, 화해와 죽음을 다층적으로 풀어낸다.
첫째마당 ‘문둥이마당’
두 명의 문둥이가 병든 몸으로 소고춤을 추며 무대를 연다. 이들은 조롱과 혐오의 대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병과 차별에 대한 사회적 현실이 중첩되어 있다. 동래야류에서는 타 지역과 달리 갈등보다 형상화에 집중하며, 탈놀이의 시작을 상징과 몸짓으로 열어간다.
등장인물: 큰문둥이, 작은문둥이
상징: 질병과 배제,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
둘째마당 ‘양반과장’
다섯 명의 양반—원양반, 차양반, 모양반(또는 두룽다리), 넷째양반, 종가도령—이 등장하며 각자의 탈과 복식은 위계와 성격의 차이를 드러낸다. 이들은 무너진 질서를 되살리고자 말뚝이를 부르지만, 말뚝이는 양반 가문의 계보를 읊으며 우쭐대다가, 원양반의 부인을 유혹했던 일화를 들춰 조롱을 가한다. 양반의 위선은 웃음과 함께 폭로되며, 원양반은 결국 논을 모양반에게 양도하고 화해에 이른다. 탈의 입이 움직이는 절악면 구조는 과장의 재담을 강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여타 지역의 냉소적 결말과는 다른, 동래야류 특유의 상생 구조를 보여준다.
등장인물: 원양반, 차양반, 모양반(두룽다리), 넷째양반, 종가도령, 말뚝이
상징: 계급 해체, 위선의 드러남, 공동체적 회복
셋째마당 ‘영노마당’
영노가 무대에 올라 아흔아홉 명의 양반을 잡아먹었다고 선언하고, 마지막 남은 한 명을 잡기 위해 추격한다. 양반은 짐승처럼 기어 다니며 자신을 낮추고 목숨을 구걸한다. 그러나 결국 영노는 그를 잡지 않고 물러나며 화해의 제스처를 보인다. 이 장면은 권력자의 비굴함과 피지배자의 관용이 교차하는 구조로, 군사적 권위가 강했던 수영 지역과 달리 동래 지역만의 포용성을 드러낸다.
등장인물: 영노, 비비양반
상징: 권위의 무력화, 공존의 가능성, 비굴함과 위선의 전도
넷째마당 ‘할미·영감마당’
가출한 영감을 찾아 나선 할미가 마침내 그를 찾지만, 영감은 첩 ‘제대각시’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갈등은 결국 할미의 죽음으로 귀결되며, 굿과 장례 행렬이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마당은 민속적 의례와 현실 가족사의 엇갈림을 통해, 사랑과 상처, 죽음과 재생의 상징적 구조를 드러낸다. 부부 갈등을 통한 가부장제 비판으로도, 죽음과 겨울의 이미지로도 해석된다.
등장인물: 할미, 영감, 제대각시
상징: 사랑과 상처, 죽음과 재생, 가족 구조에 대한 비판
탈놀이는 비현실적인 형식을 띠지만, 그 안에는 현실보다 더욱 날카로운 시대의 은유들이 녹아 있다. 계급과 성별, 공동체의 모순과 가능성을 동시에 품은 동래야류는 지금도 살아 있는 문화로, 오늘의 몸과 마음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단지 전통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전통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짓과 호흡을 담아내고자 했다. 공연 탈과 의상을 그대로 착용한 연행자들의 13점의 인물 사진과, 전통 탈을 독립적으로 조명한 13점의 정물 사진은, 탈을 쓴 사람들의 시간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응축한 결과물이다. 탈을 벗은 얼굴은 이번 전시에 등장하지 않지만, 이 기록은 곧 다가올 다음 장면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탈을 쓰고 시대를 말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 그 탈을 이어가는 사람들.
이 전시는 그들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는 한 장의 창이다.
Remembering the Times with a Mask: Dongnae Yaryu
Dongnae Yaryu is the Ogwangdae (Mask Dance Drama) that has been passed down in the Dongnae area of Busan, and has the characteristics of both a New Year’s ritual and a folk play. Starting with the Jisinbapgi and Dangsanje at the beginning of the year, the mask dance performed around the 15th day of the first lunar month is not just a play, but a social play and art that records the lives and consciousness of the people of the time.
This exhibition aims to visually reconstruct the emotions and voices of the times contained in the tradition through the masks, characters, gestures, and structures that appear in Dongnae Yaryu. In particular, it captures the moment when the records of the past come back to life through the present body through scenes where the performers who are continuing the tradition wear the masks and costumes of the characters they play and reenact them.
Dongnae Yaryu consists of four acts, and each play is independent yet closely connected to each other, multi-layeredly unfolding the power, conflict, reconciliation, and death within the community.

동래 야류 – 얼굴없는 초상
기록에서 시작된, 전통의 몸짓에 대한 응시
과거를 입고, 현재를 걷는 이들
동래야류는 내가 처음 마주한 전통 탈놀이였다. 그저 기록 사진으로 시작된 촬영이었지만, 탈을 쓰고 등장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눈빛을 좇다 보니, 단순한 연극 이상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단절되었던 동래야류는 지역 예인들의 노력과 증언, 그리고 기록을 통해 복원되었다. 그렇게 되살아난 전통은 지금도 해마다 이어지고 있고, 무대 위에는 여전히 탈을 쓰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단지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감정으로 이야기를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 이번 작업은 ‘기록’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태도와 삶에 집중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가업처럼, 누군가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 연희에 발을 들였다. 그들의 동작은 오래된 극본을 따라가면서도, 지금 이 시간을 살아내는 형식이 되었다.
나는 이번 촬영에서 두 가지를 담고자 했다. 하나는 탈이 지닌 상징과 그 형상이 몸 위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순간. 다른 하나는 그 탈을 쓰고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전통을 대하는 태도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래야류의 주요 과장을 구성하는 탈 13점과, 등장인물로 분장한 13인의 인물 사진을 함께 선보인다. 모두 실제 연희자들이며, 공연에 사용하는 탈과 의상을 착용한 채 촬영되었다. 얼굴을 가린 이 초상들은 오히려 전통의 무게와 지속성을 더 또렷하게 보여준다.
전통은 반복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탈을 쓰고 등장하는 이들의 현재는 과거의 연장이자, 미래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전통은 누군가의 몸을 빌려, 오늘도 그렇게 숨 쉬고 있다. 이 전시가, 우리가 가진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고,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기획 – 김민주